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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압박골절, 허리디스크, 척추관협착증, 병명을 알아도 여전히 아프다면 척추 각도의 문제

  • 작성자 사진: 메디
    메디
  • 11시간 전
  • 9분 분량

제1장

척추는 병이 아니다, 각도다

사람들은 척추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병부터 떠올린다.

허리디스크, 척추관협착증, 전방전위증,

그리고 노인에게 흔한 척추압박골절까지.

이 이름들은 모두

의학적으로 존재하고,

진단 기준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병명을 부정하려는 책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묻고 싶다.

그 병들은 왜 생겼는가?

대부분의 설명은

노화, 퇴행, 연골 마모, 뼈의 약화,

유전, 생활 습관을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인이라기보다

조건에 가깝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같은 나이, 같은 환경에서도

디스크가 터지고,

왜 어떤 사람은

협착이 진행되고,

왜 어떤 사람은

압박골절을 반복하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핵심은

조직이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의 핵심이

바로

척추가 중력을 받아들이는

각도다.

척추는

기둥처럼 서 있는 뼈의 묶음이 아니다.

머리의 무게,

몸통의 무게,

팔과 상체의 움직임,

그리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반력까지

모두를 받아

아래로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방향을 조절해야 하는 구조다.

이때 중요한 것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힘이 지나가는 방향이다.

같은 체중이라도

척추가 어떤 각도로 서 있느냐에 따라

하중은 분산되기도 하고,

특정 분절에 몰리기도 한다.

각도가 바뀌면

하중의 경로가 바뀐다.

하중의 경로가 바뀌면

조직이 받는 압력의 위치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가 병이라고 부르는

모든 형태의 척추 문제다.

많은 사람들은

디스크가 먼저 상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상에서 보면

순서는 반대다.

먼저

척추의 각도가 무너진다.

그 다음

하중이 특정 분절에 반복적으로 집중된다.

그 다음에야

디스크가 밀리고,

신경이 눌리고,

뼈가 찌그러지고,

통증이 시작된다.

즉,

디스크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압박골절도 마찬가지다.

뼈가 약해졌기 때문에

골절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물론 골다공증은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같은 골밀도를 가진 사람 모두가

골절을 겪지는 않는다.

차이는

뼈의 강도가 아니라,

그 뼈가

어떤 각도로 하중을 받고 있었는가에 있다.

각도가 무너진 척추는

충격을 분산시키지 못한다.

하중은 곧바로

앞쪽 또는 특정 한 점에 꽂히듯 전달된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았는데도

일상적인 동작 속에서

압박골절이 생기고,

한 번 골절이 생긴 사람에게서

두 번째, 세 번째 골절이 반복된다.

이 책이 말하는

‘각도’는

겉으로 보이는 자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허리를 얼마나 폈는가,

어깨를 얼마나 뒤로 젖혔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척추 하나하나의 분절이

중력선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놓여 있는가,

그리고 그 연결 구조가

하중을 어떤 경로로 흘리고 있는가의 문제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잠깐 자세를 펴는 것만으로는

각도가 바뀌지 않는다.

각도는

의식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몸이 스스로 느끼고,

조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유지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척추 질환을

조직의 문제로만 바라보아 왔다.

그러나 척추는

조직 이전에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의 중심에는

항상

각도가 있다.

이 책이

디스크를 먼저 말하지 않고,

수술을 먼저 말하지 않고,

운동을 먼저 말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회복의 출발점은

치료가 아니라,

각도를 인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척추는 병이 아니다.

척추는

지금까지

잘못된 각도로

중력을 견뎌 왔을 뿐이다.

제2장

왜 병명을 알아도 낫지 않는가

사람들은 병명을 알면

치료의 절반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MRI를 찍고,

진단지를 받고,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정해질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병명을 알고도

사람들은 계속 아프다.

치료를 받아도,

주사를 맞아도,

재활을 해도,

수술을 해도,

같은 자리에

같은 불편이 남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병명은

‘무엇이 손상되었는가’를 말해 줄 뿐,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스크 탈출증이라는 진단은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다.

그러나

왜 그 디스크에만

압력이 반복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협착증이라는 진단은

통로가 좁아졌다는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왜 그 부위에

퇴행과 압축이 집중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압박골절이라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뼈가 찌그러졌다는 사실은 말해 주지만,

왜 그 뼈가

그 각도에서,

그 방향으로,

그렇게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의학은

손상된 조직을 매우 정확하게 찾아낸다.

그러나

척추 문제의 본질은

조직이 아니라

하중의 흐름에 있다.

그리고 그 하중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항상

척추의 각도다.

사람의 척추는

중력을 위에서 아래로

곧바로 전달하는 기둥이 아니다.

각 분절이 미세하게 방향을 바꾸며

힘을 흘려보내는

연속 구조다.

이 구조에서

각도가 무너지면

하중은 더 이상 고르게 분산되지 않는다.

어느 한 분절,

어느 한 디스크,

어느 한 관절에

반복적으로 집중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가 병명으로 부르는 모든 상태다.

많은 치료는

이 결과를 줄이는 데 집중한다.

염증을 가라앉히고,

신경의 자극을 줄이고,

통증을 완화시키고,

부어 있는 조직을 가라앉힌다.

이 과정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회복이 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중이 흘러가는 방향,

각도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각도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위치에

같은 압력이 다시 쌓인다.

그래서 치료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다시 아프고,

다시 병원을 찾는다.

치료가 실패해서가 아니다.

치료의 대상이

구조가 아니라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디스크가 다시 튀어나온 것 같다”,

“협착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디스크가 문제가 아니라,

디스크에 부담을 주던

각도가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명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을

정리해 주는 언어일 뿐이다.

그 언어가

회복의 방향을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회복의 방향은

언제나 하나다.

하중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그리고 그 하중을 만드는 각도가

어떻게 무너져 있는가.

이 질문이 빠진 치료는

아무리 정교해도

반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병명을 먼저 묻지 않는다.

대신

이 질문부터 던진다.

당신의 척추는

지금 어떤 각도로

중력을 받고 있는가.

제3장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척추를 고정해 왔다

척추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이 있다.

“불안정합니다.”

이 한 문장은

곧바로 다음 선택을 불러온다.

움직이지 말 것,

무리하지 말 것,

가능하면 고정할 것.

그리고 우리는

이 말을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

불안정하면

잡아야 할 것 같고,

잡아두면

안정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불안정하다는 말은

대부분

척추가 흔들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척추가 하중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즉, 문제는

움직임 그 자체가 아니라,

움직일 때의 방향과 각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분을 거의 하지 않는다.

움직일 때 불편하면

움직임을 줄이고,

통증이 생기면

더 움직이지 않도록 막는다.

그 결과로 선택되는 것이

고정이다.

고정은

즉각적인 안심을 준다.

움직임이 제한되면

통증이 줄어들고,

불안감도 함께 줄어든다.

그러나 고정은

불안정성을 해결하지 않는다.

그저

불안정성이 드러나지 않게

가려줄 뿐이다.

각도가 무너진 상태에서의 고정은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몸이 어떤 각도로 서 있어야 하는지,

하중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몸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정된 상태에서

몸은 배울 수 없다.

신경계는

각도를 계산할 기회를 잃고,

근육은

조절에 참여하지 않으며,

척추는

중력에 대응하는 방식을

연습하지 않는다.

그 결과,

고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호가 아니라

의존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점점

고정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고정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척추가 더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몸의 조절 능력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정이 풀리는 순간,

문제는 다시 나타난다.

때로는 이전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각도는 그대로이고,

조절 능력은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불안정성을

움직임의 문제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척추의 불안정성은

움직임의 양이 아니라,

움직임의 방향이 무너진 상태다.

그래서 해결의 출발점은

움직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도를 되찾는 것이다.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척추를 고정해 온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물어야 한다.

잡아두는 것이 정말 회복인가.

아니면,

회복을 미루는 방식이었는가.



제4장

TLSO 보조기의 역할과 한계


척추 보조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장치가

TLSO 보조기다.

흉요추 보조기,

몸통 보조기,

척추 고정 보조기.

이름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몸통을 감싸고,

움직임을 제한하고,

척추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장치다.

TLSO는 분명히

의학적으로 필요하고,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보조기다.

이 책은

TLSO를 부정하려는 책이 아니다.

다만,

TLSO가 할 수 있는 역할과

해서는 안 되는 역할을

분명히 구분하고자 한다.

TLSO 보조기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어야 한다.

TLS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급성기 보호다.

척추에 골절이 있거나,

통증이 매우 심하거나,

움직임 자체가

추가 손상을 만들 수 있는 시기에는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TLSO가

몸을 지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줄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 역할이

회복의 중심으로

확장될 때 발생한다.

TLSO는

몸통을 감싸고 고정함으로써

움직임은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척추가 중력과 하중을

어떤 각도로 받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TLSO는

각도를 인식시키지 못한다.

몸이 스스로

‘지금 어느 방향으로 무너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돌아와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정보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각도가 교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TLSO 고정은

안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각도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그래서 TLSO는

급성기의 보호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회복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각도를 바꾸지 못하는 고정은

결국

되돌아올 가능성만을

지연시킬 뿐이다.

TLSO 보조기의 가장 큰 한계는

불안정성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TLSO는

불안정성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안정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두는 방식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보조기는 치료가 아니라

시간을 버는 도구로만 남게 된다.

TLSO의 역할은

명확해야 한다.

보호는 가능하다.

그러나 회복은 아니다.


제5장

TLSO 보조기는 불안정성을 해결하지 않는다

그저 지연시킬 뿐이다

TLSO 보조기를 착용하면

많은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움직일 때 덜 흔들리는 느낌,

허리를 잡아주고 있다는 느낌,

통증이 줄어든 듯한 느낌.

이 경험은

결코 착각만은 아니다.

TLSO는 실제로

몸통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불필요한 흔들림을 줄여준다.

그러나 이 안정감이

곧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TLSO가 만들어내는 안정은

척추가 스스로 만들어낸 안정이 아니라,

외부에서 억제하여 만들어낸 안정이기 때문이다.

불안정성의 본질은

움직임이 많아서가 아니다.

각도가 무너진 상태에서

하중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TLSO는

이 각도에 개입하지 않는다.

몸통을 감싸서

움직임의 범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척추가 중력을 어떤 방향으로 받고 있는지,

하중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TLSO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문제가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문제가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각도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고정만 이루어지면,

하중은 여전히

같은 분절을 향해 흐른다.

단지

움직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증상이 잠시 줄어들 뿐이다.

TLSO의 안정은

구조적 안정이 아니라,

억제된 안정이다.

그리고 억제는

회복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TLSO를 벗는 순간,

몸은 다시

같은 각도로 하중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 나타나는 문제는

이전과 같을 수도 있고,

더 빠를 수도 있으며,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몸은

조절을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TLSO는

불안정성을 해결하지 않는다.

불안정성을 만들어낸

각도와 하중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TLSO가 하는 일은

그 구조가 드러나는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뿐이다.

그래서 TLSO는

해결이 아니라

지연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보조기는

회복의 도구가 아니라,

반복의 출발점이 된다.


제6장

그렇다면 회복의 중심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척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잡는 방법’에 집중해 왔다.

불안정하면 고정하고,

아프면 움직이지 말고,

위험하면 제한하는 방식.

그러나 앞선 장에서 보았듯,

고정은 불안정성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저 드러나지 않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도대체 회복의 중심은 무엇인가.

회복의 중심은

통증이 아니다.

영상 소견도 아니다.

병명도 아니다.

회복의 중심은

척추가 다시

하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는가에 있다.

사람의 척추는

원래 불안정한 구조가 아니다.

척추는

중력과 체중을 받아

아래로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그 방향과 경로를 끊임없이 조정하는

조절 구조다.

문제는

이 조절 기능이 사라졌을 때 발생한다.

조절을 잃은 척추는

각도가 무너지고,

하중의 경로가 한쪽으로 쏠리며,

특정 분절에

과부하가 반복된다.

그래서 회복이란

손상된 조직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조절 기능을 되살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조절의 출발점은

항상

각도다.

각도를 되찾지 못한 채

근육만 강화하거나,

통증만 줄이거나,

움직임만 늘리는 것은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부하만 다시 늘리는 것에 가깝다.

회복은

얼마나 많이 움직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각도로 움직이느냐의 문제다.

각도가 회복되면

하중의 경로가 바뀌고,

하중의 경로가 바뀌면

몸은 다시

자기 보호가 가능한 구조를 갖게 된다.

그래서 회복의 중심은

운동이 아니라,

치료가 아니라,

각도의 회복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각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의 회복이다.

고정은

그 능력을 대신할 수 없다.

회복의 중심은

외부가 몸을 잡아주는 데 있지 않다.

몸이 다시

자신의 각도를 느끼고,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되는 데 있다.

그것이

진짜 회복이다.


제7장

왜 각도를 인식시키는 장치가 필요한가

앞 장에서 말했듯,

회복의 중심은

각도를 회복하는 데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척추 각도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굽어 있는지,

어느 분절이 무너지고 있는지,

하중이 어느 방향으로 쏠리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의 몸이

잘못된 각도에도

놀라울 만큼 빠르게 적응한다는 점이다.

조금 굽은 자세,

조금 기울어진 몸통,

조금 앞으로 빠진 머리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불편한 자세가 아니라

익숙한 자세가 된다.

이때부터 몸은

잘못된 각도를

정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잠깐 허리를 펴 보아도,

몇 분이 지나면

다시 원래 각도로 돌아온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각도를 느끼지 못하면

조절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느껴지지 않는 각도는

바꿀 수 없다.

이것이

척추 회복에서

‘각도를 인식시키는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이 장치는

몸을 대신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각도가 무너질 때만

저항과 감각을 만들어

몸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바른 각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필요한 개입이 없다.

그러나 각도가 무너지는 순간,

몸은

“지금 방향이 틀렸다”는 신호를 받게 된다.

이 미세한 신호가

신경계에 전달되면,

몸은 다시

조절을 시작한다.

근육은

지지해야 할 방향을 찾아 활성화되고,

척추는

중력선 위로 돌아오기 위한

미세한 반응을 만든다.

각도를 인식시키는 장치는

교정 장치가 아니라,

학습 장치에 가깝다.

몸이 스스로

각도를 배우고,

방향을 기억하고,

조절을 반복하게 만드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치는

편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손상이 아니라

정보다.

각도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편안함은

회복을 멈추게 하지만,

각도를 느끼게 만드는 불편함은

회복을 시작시킨다.

각도를 인식시키는 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다.

몸은

느끼지 못하는 방향으로는

결코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제8장

고정이 아닌 인식이 회복을 만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척추를 회복시키기 위해

먼저 잡아야 한다고 믿어 왔다.

흔들리면 고정하고,

불안하면 제한하고,

아프면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

그러나 척추는

잡아둘수록 회복되는 구조가 아니다.

척추는

느끼고 조절할 때 회복되는 구조다.

고정은

몸이 스스로 균형을 잡을 기회를 빼앗는다.

움직임이 제한되면

통증은 줄어들 수 있지만,

몸의 조절 시스템은

작동할 수 없다.

신경계는

각도를 계산할 기회를 잃고,

근육은

어느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하는지를

배울 수 없으며,

척추는

중력에 대응하는 방식을

연습하지 못한다.

그 결과

몸은 점점

외부 지지에 익숙해진다.

고정은

안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절의 부재다.

반대로

인식은

회복의 출발점이다.

각도가 무너질 때 느껴지는 미세한 저항,

하중이 한쪽으로 쏠릴 때의 불편감,

자세가 흐트러질 때의 감각은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다.

이 감각이 살아나면

신경계는 다시 각도를 인식하고,

근육은 바른 방향으로 반응하며,

척추는 중력선 위로 돌아올 조건을 갖게 된다.

그래서 진짜 안정성은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형성된다.

고정은

안정을 대신 만들어 주지만,

인식은

안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회복은

얼마나 단단히 잡아 두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느끼기 시작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척추 회복의 본질은

고정이 아니라,

인식이다.



제9장

몸은 잡아둘수록 약해지고, 느낄수록 회복된다

사람들은 흔히

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보호의 방식이

몸을 대신 버텨주는 방향으로 바뀌는 순간,

회복은 다른 길로 들어선다.

몸은

대신 지지해 주면

강해지지 않는다.

외부가 버텨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버티는 법을 잊는다.

고정은

편안함을 준다.

움직임이 줄어들고,

통증이 줄어들고,

불안감도 함께 줄어든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회복의 신호가 아니라,

조절이 멈췄다는 신호일 수 있다.

몸이 스스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어지면,

신경계는 각도를 계산하지 않고,

근육은 방향을 판단하지 않으며,

척추는 중력에 대응하지 않는다.

이 상태가 반복되면

몸은 점점

외부 지지 없이는

불안해지는 구조로 바뀐다.

잡아둘수록

약해지는 이유다.

반대로

느끼게 하면

몸은 다시 깨어난다.

각도가 무너질 때의 저항,

하중이 쏠릴 때의 미세한 불편,

자세가 흐트러질 때의 감각은

몸이 스스로 조절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다.

이 정보가 들어오면

신경계는 다시 반응하고,

근육은 지지해야 할 방향으로 활성화되며,

척추는 중력선 위로 돌아오려는 움직임을 만든다.

회복은

편안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인지에서 시작된다.

불편함은

문제가 아니라

신호다.

그 신호를 없애는 치료는

몸을 조용히 만들 수는 있지만,

몸을 강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몸은

잡아둘수록 약해지고,

느낄수록 회복된다.


제10장

편안한 치료가 실패하는 이유

사람들은 치료를 떠올릴 때

먼저 ‘편안해지는 것’을 기대한다.

통증이 줄어들고,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고,

불편함이 사라지는 상태.

그리고 많은 치료는

이 목표를 향해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척추 회복에서

편안함은

반드시 좋은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착각이 될 수 있다.

편안해졌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몸이 문제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각도가 무너졌을 때

느껴져야 할 불편함이 사라지면,

몸은 더 이상

조절할 이유를 갖지 않는다.

신경계는

각도를 계산하지 않고,

근육은

방향을 판단하지 않으며,

척추는

중력에 대응하는 법을 잊는다.

이 상태에서의 안정은

회복이 아니라

정지다.

그래서 많은 치료는

진행되는 동안은 조용하다.

통증이 줄고,

움직임이 편해지고,

불안감도 함께 줄어든다.

그러나 치료가 끝나는 순간,

문제는 다시 나타난다.

왜냐하면

몸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복이란

통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러나 편안함을 중심에 둔 치료는

이 조절 능력을 키우지 않는다.

특히 척추에서는

편안함이 곧

각도 인식의 상실로 이어진다.

각도를 느끼지 못하면

하중의 방향도 느끼지 못하고,

결국 같은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편안한 치료는

대개 실패한다.

증상을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구조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짜 회복은

편안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인지에서 시작되고,

조절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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